동생의 면접 이야기 중 들었던 생각
오랜만에 떠난 휴가중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동생이 몇달 전 본 면접에서 면접관의 도발 아닌 도발을 받았고. 그 때문에 면접을 위해 준비했던 태도가 아닌 동생의 평소 성격이 드러났고. 결국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추측이었다. 원래 사람은 본인의 잘못이라 하면 성자가 아닌 이상 조금의 화가 나기 마련이기에 동생의 반응은 이해할만 했다.
내 동생의 성격은 관심이 있는 부분에는 남들이 생각하기에 까다롭다 할 정도로 디테일을 챙기지만 아닌 부분은 철저히 무관심한 성격이다. 디테일을 챙기는 부분은 오히려 나보다 더 세심하게 챙기는 스타일인데. 만약 그런 분야에서 타인의 참견을 받으면 수긍하거나 크게 화를 낸다. 중간이 없는. 형제가 아니랄까봐 나와 정확이 똑같은 성격이다. 그 날 동생은 아버지의 반복된 지적에 대해서도 끝까지 수긍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이런 모습에서 동생이 조금은 컸나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생각은 이랬다. 그날 동생은 면접관의 도발 - 정확하게 모든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은 만약 타 부서의 상사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설득을 해도 완강히 거절하여 동생의 담당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쩌겠냐. 라는 질문이었는데. 동생은 "일단 그 분의 상황을 들어 보고 서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은 뒤에 설득해 보겠다" 라고 답했고. 이 답변에 "그래도 안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는 질문에 "당장은 어렵지만 혹시 나중에라도 가능하게 될 수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기억해 두고 추후에 다시 연락하겠다." 답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지속적으로 "그래도 안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는 응답을 받았고. 이런 질문을 4번정도 지속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나 같아도 뭔가가 끓어올랐을 것이다 - 에 결국 동생은 "그럼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 대답은 약간 화가 난 상태에서 했기 때문에 까칠하다고 느낄만한 모습이 드러났을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분명 동생과 앞으로 일을 할 담당자가 기분 좋지 않을 모습이기 때문에 결국 판단 기준에 의해 탈락된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나와 동생은 그 이야기에 다른 의견을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일을 할 때 그런 껄끄런 후임과 일하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다음 면접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런 성격을 내비치지 말라고 이야기하셨다.
그 상황에서 난 동생에게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동생은 어떻게든 무속인 면접관이 만들어 낸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려 했을 것이다. 면접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인내심이 높아진 상태여서 어떤 사람이든 좋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겠지만. 합격한 후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실제 그런 상황을 접했을 때. 그렇게 조금이라도 발끈하는 성격이 없는 사람은 내가 담당하는 일에 대한 욕심이 없이 그냥 물 흐르듯이 흐르는 세월이 지나가기만 바라는 사람일 것이다. 미열이라도 그런 부분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본인 뿐만 아니라 주변에 발전을 주는 사람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아버지는 그런 열정은 입사에 성공한 후에 가지는 것이 맞고 지금 당장은 그런 성격을 억누르는 것이 맞다고 말씀하셨다. 나나 동생이나 그 의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 이야기를 더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동생이 그런 성격을 일 하는 데 잘 적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는 그런 미열이 없는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길 바란다.
2018년을 시작하는 일기
작년 말 제주도를 다녀오고 디지털 카메라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름이 디지털에 비해 수고스러운 면은 있지만. 디지털에서 느낄 수 없는 따듯함, 독특함같은 아날로그 감성이 디지털 카메라를 한달 이상 제습함에 모셔두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이 직업이 아니라 가끔 몇장 찍는데 무거운 장비를 운용하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결국 오래 사용하지 못하고 작년 말에 정리했다.
카메라를 정리하면서 차량을 구입했다. 렌트 여행을 꿈꾸던 내게 면허 취득 후 만 1년이라는 모든 렌트 회사의 공통 규칙은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었다. 해서 차를 구입하기로 했고. 처음엔 풀체인지된 도요타 캠리를 구입할 계획이었는데. 인피니티를 시승해 보고. 바로 인피니티로 결정했다. 뭐 다들 그렇잖는가. 원래 계획한 수준 보다 더 비싼 차를 사게 된다는 것 말이다. 개인적으로 국산은 싫었고. 어차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선이었다. 지금 정말 만족하며 타고 다니니까 좋다.
그렇게 내 첫 차는 후륜차가 되었는데. 후륜차는 눈길에서 운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일줄은 몰랐다. 연초에 가족과 함께 포천을 놀러갔는데. 신발 및창의 두배정도 깔린 경사로의 눈 위에서 엑셀을 밟으니 차가 좌 우로 요동쳤다. 뒤에서 가족들이 밀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금은 여름용 런플렛 타이어 탓을 하고 있는데. 1월 말에 고성능 사계절 타이어로 바꾸는데 바꾸고도 그러는지 한번 지켜보아야 겠다. 눈때매 왔다갔다 하는건 무섭지 않은데. 후속사고를 상상하니 조금 걱정이 된다.
작년 초 이직하고 지금은 정말 만족스럽게 다니고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이상한 사람이 없고. 합리적으로 돌아간다. 또라이가 없다면 본인이 또라이라는데. 내가 또라이인가 싶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아니 그냥 그 미신이 틀린게 아닌가 싶다. 가끔은 내가 사람을 참 못본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람들이 팀에 합류했고. 그들도 참 좋다.
그 동안 사진은 찍었었는데. 현상을 안했다. 흑백 필름을 얻어서 찍고 현상액까지 다 준비해뒀는데. 이놈의 희석이 그렇게 귀찮은지 시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몇일 전에 현상해보았는데. 역시 좋다. 필름 만세. 장비는 이제 여기서 정착해도 될 듯 싶다.
카메라 선택의 딜레마
나는 RF카메라를 선호한다. 거의 대부분 RF카메라는 수동 초점 방식이다. 뷰파인더 내의 이중합치와 렌즈 위쪽의 피사계심도표를 이용해서 초점을 잡는다. 자동 초점방식이 편리하긴 하지만,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초점링을 돌리지 않으면 뭔가 빼먹은듯한 기분을 느껴서 이제 어쩔 수 없다. 민망한 경험이지만 뷰파인더가 없는 카메라인데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가져다 댄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 들인 중형 필름카메라의 선택 기준도 'RF이어야 할 것' 이었다. 그래서 들인 카메라가 80mm 고정렌즈(풀프레임 환산 50mm)가 달린 Fujifilm GF670. 중형치고 너무 컴펙트한 카메라라 부담없이 어깨에 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근데 사용하다 보니 역시 '평가측광'과 렌즈 교환에 대한 욕심이 생기고 있다. 그래서 요새 Mamiya 7-ii 를 Ebay에서 보고 있다.
Mama 7-ii 는 평가 측광을 지원하는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전에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본체 뒤쪽의 버튼은 그저 '다중노출' 을 위한 버튼이었고 이 카메라 역시 스팟 측광만을 지원했다. 게다가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사진의 밝기를 계산하지 않는다.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으로 무언가 계산하는 것을 TTL(Through the lens)이라고 하는데 GF670, Mamiya 7-ii 둘 다 그런 방식이 아니다. 렌즈 윗 부분에 빛을 체크하기 위한 별도의 창이 있다. 이게 무엇이 안좋으냐면. 차근차근 설명해보겠다.
역사 교과서나 TV프로그램에서 '사진기의 발명' 이라면서 어떤 아저씨가 카메라 앞에 뚜껑을 열고 시간을 재다가 얼른 닫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게 오늘날의 셔터속도다. 사람이 뚜껑을 여닫던 것을 기계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오랫동안 뚜껑을 열고 있으면 빛을 많이 받아들인다(사진이 밝게 나온다). 대신 흔들릴 확률이 증가한다. 뚜렷한 사진을 얻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짧은 시간만 열어두면 빛은 적게 받아들이지만(사진이 어둡게 나온다) 흔들릴 확률이 감소한다.
뚜렷하면서도 밝게 나오게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될까? 빛이 들어가는 구멍의 넓이. 그러니까 빛이 지나가는 통로를 더 넓게 만들면 된다. 이것이 오늘날의 조리개 (F) 이다. 뚜껑을 짧은 시간을 열어두어도 구멍이 크면 (셔속이 빨라도 조리개를 열면) 흔들림 없는 밝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피사체를 부각시키는 데 응용할 수 있는 아웃포커스 현상이 발생한다. 아마 처음 이 현상을 접한 사람은 이 문제(?)를 없애려 하지 않았을까 한다.
정리하면 적절한 밝기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위의 두 가지 (셔터속도, 조리개)를 조절해야 한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셔속이 빠르면 조리개를 열어야 할 것이고, 셔속이 느리면 조리개를 닫아야 할 것이다. 반대로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매번 직접 계산하지 않는다. 그냥 다 알아서 찍어주지 않는가? 그게 바로 카메라의 '측광' 시스템이다.
여기서 상황을 하나 가정해 보자. 다음 컷에서 아웃포커싱 효과를 꼭 이용하고 싶다. 그렇다면 조리개를 무조건 열어야 할 것이다. 햇빛이 적절하면 상관이 없는데, 막 내리쬐고 있다. 이 때 적절한 밝기의 사진을 얻으려면 셔터속도가 엄청 빨라야 한다. 보통 1/8000초 1초에 8000번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정도의 속도로 뚜껑을 열었다 닫아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카메라들이 자동으로 뚜껑을 여닫는 시간은 최소 1/4000 까지이다. GF670, Mama 7-ii 둘 다 최소 1/500 밖에 지원하지 않는다. 이러면 그냥 하얀 사진만 찍히고 말 것이다. 절대 피사체를 찍을 수 없다.
그럼 뚜껑 대신 무얼 하면 좋을까? ND필터를 사용한다. 눈부시면 선글라스 쓰는것처럼 투명한 필터를 렌즈 앞에 끼우는 것이다. 그럼 1/4000으로 사진을 찍더라도 빛이 덜 밝게 들어온다. 이 ND필터도 수치가 따로 있는데, '이 필터는 두배 어둡게 해줘요', '이 필터는 세배 어둡게 해줘요' 그런거고 그냥 어둡게 해준다고만 생각하자.
이제 다시 딜레마 이야기로 돌아와서. 카메라가 '측광'을 통해 적절한 밝기로 사진 찍고싶으면 셔터속도 몇, 조리개 몇. 계산해줄것이다. 근데 여기에 선글라스를 끼워 빛을 줄였다. 카메라가 그걸 인지할까? 여기서 두 가지 상황으로 나뉜다. 카메라가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으로 계산을 할 경우 (TTL) 렌즈 앞에 선글라스를 끼웠으니 어두워졌다는것을 인지해 셔터속도를 느리게 한다. 그럼 만약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으로 계산하지 않는 카메라는?
손가락을 꼽아 가며 수동으로 계산해주어야 한다. 손가락 꼽다가 찍고 싶은 타이밍을 놓치거나, 계산을 잘못해서 너무 어둡거나 너무 밝은 사진이 나와버리는 것이다. GF670, Mamiya 7-ii 둘 다 이런 방식이라 사용하기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 이것 말고도 몇가지 불편한 사항들이 있지만 위에 설명한 내용이 제일 불편하다.
그렇다고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계산하는 중형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기는 싫다. RF방식이 아니라서다. 카메라가 RF초점 방식을 가지면 구조상 DSLR보다 더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는데 그 컴펙트함을 좋아한다. 미러리스도 작고 가볍지만 별로 쓰고 싶지 않다. RF이어야 한다. 내가 왜 RF를 고집하는지까지 이 글에서 다루면 너무 길어질 듯 하다. 지금 밑에 적어두긴 했는데 메모장에 옮겨 두고 나중에 정리해서 따로 올려야 할 듯 하다.
이름
사진의 정 가운데에 있는 물체가 무엇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쓰레기가 쌓여있는 부유물? 정도로만 보인다. 현상을 끝내고 필름을 확인할 때 나는 실수로 생긴 스크래치인줄 알았다. 그 물체가 별로 아름다워보이지 않아 관심이 없지만, 만약 사진에 잘 어울리고 아름다웠다면 '저게 뭐지?' 라는 궁금증이 생겼을 것이다.
이름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우리의 관념에서 가장 당연한 것이면서 또 아니기도 한 것이 이름이다. 나는 1년전에 하던 게임에서 이 개념을 깨달았다. 폴란드의 판타지 소설 더 위쳐에서 어떤 괴물을 무찌를 때 그 괴물의 이름을 계속해서 외치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름에는 상대를 구속하는 마법적인 힘이 있다고 해서였다. 사실 게임에서 그 문구를 보자마자 사회 초년생일때의 내가 떠올랐다.
4년전 두 번째로 다니던 회사에서 처음으로 내 이름을 성을 포함해 큰소리로 불렸다. 그 외침의 앞에는 '야' 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당시 사회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그런 상황에서 심장이 두근대곤 했는데 그날 그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멎을 만큼 심하게 두근거렸다. 갑자기 몸이 경직되고 떨리기 시작했다. 이름을 불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일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역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가보다.
어떠한 문제에 대해 해결한 방법을 정리한 것을 일반적으로 '패턴'이라고 한다. 패턴에 대한 책을 보면 먼저 현상의 '이름'을 소개하고 현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그 해법 순서로 풀어나간다. 여기서도 어떠한 현상에 '이름'을 붙여 정리하고 있다. 무시할 것이 아닌 점은. 어떠한 것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예측과 예방을 가능하게 하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름을 붙이는건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고심끝에 정한 이름이라도 이미 적합한 이름이 만들어져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내 직장에서 업무상 무언가의 이름을 정할때 팀 사람들과 한시간 이상 논의하기도 한다. 또 내가 올해 2/1에 걸린줄 알았던 '식중독 증세'는 사실 '장염' 이었다. 의사는 장염이란 이름으로 내 병명을 판단하고 빠르게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런 관점에서 어떠한 현상에 대한 이름을 천천히 되짚어보면 그 표현력에 놀라곤 한다. 왠지 모르겠지만 지금 떠오르는 단어는 '썸' 이 있는데 타인과의 관계가 친구와 연인의 중간 어디쯤일 때의 상황을 가르키는 말이다. 이 단어를 모르면 사람마다 긴 설명을 하고 이해해야 서로 소통할 수 있을텐데, 우린 '썸'이라는 1글자의 단어로 빠르게 소통하고 있다.
논점에서 벗어난 내용이긴 하지만. 개인 블로그니까 상관없으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주말'을 만든 사람은 천재라고 생각한다. 길지도 짧지도 않으며 반복적으로 휴식 시간을 준다는 개념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주말'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주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었을까? 어떤 이름으로 불렀을까? 다른 형태로 휴일을 썼을까? 아니면 아예 쉬지 못하고 있을수도 있을까?
말을 조금만 하는 이유
내가 필요할 때 빼고 말이 많지 않은 이유는.
첫째 추측하여 말하기 싫다. '어디서 들었는데', '누가 말해줬는데' 이런 말로 자주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신뢰가 확 떨어진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내용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둘째 모든 문제는 정답이 없다. 어떤 사람이 A라는 문제를 B라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B라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그 뿐이다. 똑같이 B라는 방법으로 해결할 지 아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끼리도 같은 B라는 방법을 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B, B', B''... 조금씩 다른 방법인데 말할때는 그리 들리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방법을 이야기할 때 극도의 주의를 한다.
셋째 말이 많은게 싫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짜증스런 사람만 해당하는 줄 알았는데, 모든 목소리가 다 그렇다. 말을 너무 많이 하면 귀에 상당히 거슬린다. 조금이라도 확신이 있는 사람은 짧게 말해도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확신이 없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이야기에 책임질 수 없으니 온갖 미사여구를 통해 꽁꽁 숨기는 것이다.
넷째 실수하기 쉽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수하기 쉽다. 뭐... 당연한 것 아닌가. 어색한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더라. 갑자기 대화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다던가. 재미없는 개그를 한다던가로 논제를 흐리는 사람 싫다.
마지막으로. 말을 많이 하면 피곤하다. 나는 책임질 수 있는 이야기만 하며 살고 싶다. 적어도 '아님 말고'라는 이야기를 최소화하며 살고 싶다.
사진에 의도를 담고 싶다
출사 후 집에 돌아와 한숨 돌린 후 그날 찍었던 사진을 보다보면 좋은 사진을 선별하게 되고 이 사진들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 보면 촬영 당시의 상황과 관련이 있던 없던 어떠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예를 들어 우연히 다른 가족이 사진을 찍는 상황을 촬영했다고 하자. 이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이야기로 사진을 정리하는 형태는 의도를 담은 사진이라고 보기 어렵다. 의도를 담았다는 것은 최소한 촬영 전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것을 촬영하는 것이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찍기 시작한 것이 이제 1년 정도 된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중에 앞서 언급했던 의도를 담았던 사진은 3컷도 안된다. 좀 더 분발해야 하는 것인지 즐겨야 하는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겠다.
이성적인 일, 감성적인 일
내가 하는 일은 지극히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과연 그것이 유용한것인가 아닌가를 따지고 하는 중간에도 어느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따지고 끝난 후 결과가 어땠는지 따진다.
나는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그런데 듣다 보면 정말 틀린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는 반박을 한다. 이 때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대화의 목적은 어느 한쪽이 제시한 방법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때 집중력을 잃는 등의 행동을 보이면 주도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게 어디있어' 라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많은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이 주도권을 잃는 것을 보았다.
피할 수 없이 이 상황에 처하면 이때부턴 감정적인 소모전이 되는 느낌이다. 내가 왜 옳은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리를 하며, 상대의 이야기에 논리적 오류를 찾아야 하는 것이 어렵다. 이게 문제와 나를 완전히 분리시켜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나의 작업물이 도마에 오르면 분리해 생각하기가 너무 어렵다.
아니 아예 분리라는 것이 존재할까? 내가 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게 어떻게 분리가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까지 겪었던 그런 대화의 양상은 상항 그게 옳다와 아니다 두 편이었다. 한번도 대화가 그것과 다른 방향으로 흐른 적이 없다. 분리할 순 없다.
나 혼자 편하고 재미있게 하는 사진 생활은 이런 소모전에서 자유롭다. 이 안에서는 맞다 틀리다의 기준이 없고 그저 좋기만 하면 된다. 너무 느낌이 좋은 사진을 찍고 인쇄해 보면 행복하다. 가끔은 직업으로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좀 오버..
이성적인 일과 감성적인 취미의 조합이다. 이전에 기타 연주를 할때도 그래서 너무 좋았나보다. 여기에 또 관계라는 개념이 끼어들면 피곤해지던데 이젠 그러지 않도록 조심할거다.
A3인쇄기를 사서..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중에 좋았던 사진을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포토프린터가 좋긴 하지만 내가 '사진집' 같은 너무 좋은걸 봐버려서.. 엽서 사이즈를 붙이면 별로 이쁘지 않을듯.
안목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이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데 나도 100% 동의한다. 예술은 조금 다를 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다른이의 생각과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사진집을 구입해 보는 것은 매우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보는 안목'이라는 영역에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은 없다. 다만 사진집을 보면서 느끼는 감각이 도움이 된다.
근래에 내가 사진집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첫째 인쇄 방법과 품질에 대한 내용이다. 사진은 일반적으로 모니터와 종이 두 가지의 매체를 통해 타인에게 전달되는데, 이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조금 더 세련되고 좋은 느낌을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위에 올린 사진집은 이라선 에서 구입한 윌리엄 이글스톤의 사진집인데 하얀 무광택지에 하얀색을 제외한 나머지 색에만 염료가 입혀져 있다. 손으로 만져보면 색이 입혀진 부분에서 독특한 촉감이 온다. 사진을 볼 때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하니 무언가 색다른 느낌인데 그 느낌이 좋아 나도 그렇게 내 사진들을 인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번째는 역시 다른 사진가의 관점에서 보고 배울 점이 있다는 점이다. 너무 일상적인 것들을 사진집으로 만든 작가가 있는 반면 어느정도 정돈된 독특한 상황을 찍어 만든 사진집도 있다. 이런저런 사진집을 보면서 '이렇게 한번 찍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할 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다.
세 번째는 어떻게 하면 다수의 타인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다. 사진은 단순히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은 여러 매체를 통해 접했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너무 굶주려 독수리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어린 소년의 사진부터, 가까운 시위 현장에서 대립하고 있는 전경과 시위대의 사진이 그런 예다.
나는 절대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아주 조그마한 것부터 주제를 잡고 10장 정도를 촬영해 앨범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일반적으로 그런 형태의 작업을 '프로젝트' 라 한다고 들었는데, 이리저리 검색을 해 보니... 잘 찍는 분들이 너무 많다. 아무것도 내밀 수 없다. 셔터를 많이 눌러야 겠다.
말이 많은 사람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 싫다. 스물아홉의 삶을 살면서 말이 많은 사람 치고 정말 실속있는 말을 하거나 본받을만 하다 느꼈던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하나같이 그냥 그랬다.
지금까지 살면서 봤던 말이 많은 사람의 종류는 두 가지였다. 하나도 남지 않는 우스개 소리로 그 순간을 재미있게 보내는 사람, 표현의 방법이 서툴러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하는 사람이다.
첫 번째 사람은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다 같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눈치없이 공감대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 제외)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이런 대화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항상 유리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하는 소리들이 철없는 애기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들이어서 듣다보면 집에 가고 싶더라...
두 번째 타입의 사람.. 내가 들어주는 입장이 되는 경우 너무 힘들다. 이런 사람의 경우에도 이야기 하는 내용이 개연성있게 연결되는 사람은 그나마 좀 낫다. 하지만 마치 의식의 흐름 처럼 대화의 주제가 들쑥날쑥하거나, 남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너무 힘들다. 이런 사람의 대화를 듣다 보면 어렸을 적 `책을 많이 읽읍시다` 라는 권유가 이해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러지 않는지 경계를 하는데.. 경계를 하다 보니 말 수가 줄어들기까지 하더라...
말 수가 많으면 불리하다. 말 수가 많아 실수할 확률이 증가하고, 개연성있게 내용을 이어가지 못할 확률 역시 증가한다. 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하는 이의 자신감있는 태도에서 믿음을 얻고 계속해서 듣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는데, 말을 많이 할수록 이 믿음을 얻기가 어렵게 된다.
모두의 공감대를 얻을 순간순간의 우스개 소리도 잘 하고 싶지만... 그 부분은 자신이 없으므로.. 난 언제나 자신감있는 큰 소리로 타인에게 의사를 명확하고 짧게 전달하고 싶다.
사진을 찍는 이유
예비군 훈련중엔 많은 생각을 한다. 나의 일 또는 무언가에 임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곤 하는데 오늘은 내가 왜 사진을 찍고 있나 궁금했다. 그저 무의미하게 컷 수만 늘리고 사진들은 그저 하드디스크에 있다가 내가 죽거나 잃어버리지 않는 이상 그 아무도 볼 수 없는 것 뿐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흘러 오후 7시쯤 훈련의 막바지가 되었다. 매 훈련때마다 힘든 무언가를 꼭 하나씩 시켰었는데 이번에는 동네 근처 산에 오르는 일이었다. 무거운 군장과 총을 매고 비탈길을 올라 목적지에 도착했다. 온몸에 흐른 땀을 미미하게 부는 바람에 말리고 숨을 고른 다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무들 사이로 내가 매일 다니던 성남 시내 대로가 보였다. 매일같이 다니던 그 대로의 풍경은 정말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제각각인 건물 색상, 간판 색상, 낙후된 건물들, 지저분한 거리는 셔터를 누르기 주저하게 만드는 피사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날 저녁 산 위에서 바라본 모습은 달랐다. 카메라가 없어 사진을 남기지는 못해 아쉬웠다.
어쩌면 취미 생활 수준의 사진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눈 앞에 있는 아름다운 순간을 정확하게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역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맙게도 나의 환경은 이 목적에 다다르기에 정말 차고 넘친다. 단지 나의 역량이 부족할 뿐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여러 시도를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