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사진

#LeicaQ #iso50000
#LeicaQ #iso50000

2월 샌프란시스코 여행중 찍은 사진이다. SF에서 페리를 타고 소살리토를 보고 다시 SF로 돌아가는 페리를 기다리는 줄에서 찍었다

나는 이 사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iso 50000의 고감도 사진이라 노이즈가 심하지만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사진이다.

Leica Q를 구입한 후에 정말 잘 구매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28mm 단렌즈인데다가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물론 구입 전에 라이카의 디지털 중 탑이라는 여러 리뷰를 봤을때는 정말 가지고 싶었지만 말이다.

결론은 잘 샀다. 이 카메라는 내가 구하게 될 당시의 가격보다 약40만원정도 비싸졌다. 원가 상승으로 인해 본사에서 모든 제품의 소비자 가격을 올렸던 것이다.

나는 Q가 고감도에서도 좋은 품질을 내 줄 것으로 믿고 감도를 신경쓰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귀국 후 바로 사진을 보았을때는 그다지 좋다고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사진을 추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진이다.

재미있었던 점은 '디지털 라이카'라는 주제로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생기곤 했다. 라이카를 가진 타국인을 보는 시선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통해서라도 여러 헤프닝이 있었단 것에 고맙고 뿌듯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물론 소살리토에서 보냈던 여행을 너무 좋았다. 여행지였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을 고려하더라도, 그렇게 여유가 있고 분위기 좋았던 여행은 없었다. 발목이 아플정도로 걷는 것을 정말 싫어하지만 여기에서만은 그런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언제 또 갈 수 있을까? 내가 세운 계획대로라면 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지금은 그저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뿐이다.

계획

#r-d1x #summicron50 #cafealeg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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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언가 계획을 따라야 하는 것이 싫다. 세상만사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내가 착실하계 계획을 세운다고 과연 그 대로 살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정도 단기적인 계획은 세우고 사는 편이지만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니다.

그런 나에게 인생 최장의 계획이 바로 해외 취업이다. 2년 내에 미국으로 가는 것.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역시 영어가 제일 문제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한참 모자라다. 가뜩이나 한국말로도 소통이 안되는데 영어는 어떨까.. 직장 동료에게 적어도 언어관련 문제로 배려를 받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어느정도 마무리 되고 여유가 생기면 영어 학습에 투자를 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내가 뭔가 욕심내서 막 소비를 했던거처럼 영어에 투자를 할 생각이다. 지금은 아직 바쁘고 조만간 시작할 계획이다.

미국을 간다고 해도 절대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진 않을 것이다. 몇 달간 직업을 구할 수 없을 수도 있고 구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문제가 있을수도 있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물론 끝내 구하지 못하고 귀국하면 안되지만 말이다.

일단은 지금의 일을 착실히 해결하며 때를 기다려야겠다.

나는 왜 개발자가 되었나

나는 왜 개발자가 되었을까? 개발자가 되면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쁠까? 내가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한 때는 고등학교 3학년때였다.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집에서는 밤새서 울티마 온라인을 했다. 남는 시간에는 악보를 보며 클래식 기타 연주 삼매경에 빠졌다.

어렸을때 부터 컴퓨터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흑백 애플 컴퓨터를 집에 가져오셨다. 그 컴퓨터로 했던 일은 고작 헬기 게임이었고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삼성 PC 집에 들이고 나서부터 컴퓨터에 대한 나의 열정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라바TNT 그래픽카드를 설치하고, N64에뮬레이터로 게임을 접한 후 부터 나는 게임에 완전 빠져들기 시작했다.

에뮬레이터로 N64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설정들을 이해하고 게임에 맞게 설정할 수 있어야 했다.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젤다의 전설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서 롬 파일을 받고 그것을 에뮬레이터에 로드하고 어떤 그래픽 옵션을 켜고 끄고 하는 등의 설정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컴퓨터 용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바TNT는 그때 당시 N64 젤다의 전설을 부드럽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그래픽카드였다. 그래서 더 집착했었던것 같다.

얼마 후 부두 그래픽카드를 구할 수 있었다. 정말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었다.

군산에서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플래시를 공부했다) 포토샵 과외를 받았다. 부모님은 내가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것을 아시고는 과외해줄 분을 수소문했던 것이었다. 군산대에 다니는 학생에게 포토샵 과외를 받았다. 포토샵도 배웠지만 그 때 울티마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알아버렸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날 이후로부터 공부와는 인연을 끊었던 것 같다.

울티마 온라인 14일 무료로 정식 서버에서 게임을 하고 검색끝에 '프리샤드' 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프리샤드는 정식 서버를 카피해 별도의 서버에서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리샤드를 운영한다는 것은 서버를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프리샤드에 접속하려면 클라이언트를 수정해야 했다. 그러면서 어느정도 TCP/IP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돈을 내고 정식서버를 한달 해보기도 했다.

울티마 온라인은 레벨이라는 개념이 없다. 광석캐기, 나무하기, 조련하기 등의 스킬이 많고, 0 ~ 100%의 숙련도가 있는 시스템이었다. 이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반복된 작업을 해야 했다. 이 때 매크로를 사용했는데, 매크로를 작성하면서 어느정도 프로그래밍에 눈을 떴다. 고작 게임 매크로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나름 변수도 있고, 조건문을 통해 여러 동작을 자동화할 수 있었다.

이 기나긴 울티마 온라인의 말로는 수능 스킵과, C#소스 분석으로 끝이 났다. 울티마 온라인이 완전 개편되며 3d로 새로 출시되었다. 중국에서 프리샤드가 나왔지만 C#기반으로 개발되어 있었고, 이를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관심이 떠나버렸다.

그 이후에도 여러 사건이 있었다. 수시로 전문학원에 진학해 졸업하고, 군대에서 웹 페이지를 개발했고, 전역하자마자 사수였던 사람과 함께 스타트업을 하고, 이직하고... 말이다.

어렸을때부터 접한 컴퓨터가 이제는 직업이 되어버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익숙한 것을 직업으로 선택한 케이스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개발자가 된 것에 후회는 없지만. 한편으로 개발자가 아닌 내가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 백수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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