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ma dp3 quattro
쓰던 카메라를 모두 팔고 한동안 GR3만으로 버티다 보니 망원에 대한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질문 중 하나가 '스마트폰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를 따라잡지 않았나요?'인데. 화각에 따른 왜곡을 제외하고는 따라잡았다는 댓글을 달다 보니 더욱 더 망원이 그리웠던 것 같다.
그래서 시그마 FP의 포베온 버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카 75mm APO렌즈 조합이라면 무게는 안드로메다행이지만 부피는 작으니까 만족스러울 것으로 생각하고 구매하려고 했는데 포베온 버전의 개발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 시그마 DP3 Quattro 를 구입하게 되었다.
화각은 50mm로 풀 프레임 환산 75mm로 인물사진을 촬영하는데 안성맞춤이다. 화소는 33MP로 대형인화에도 크게 무리가 없고 실제로 포베온 센서의 특징으로 오히려 일반 베이어 레이어 센서보다 적은 화소에도 또렷한 이미지 품질을 보인다 한다. 중형에 필적한다고 하는데 2달정도 사용해보니 필적할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이전에 사용했던 소니 미러리스보다 세부 묘사가 뛰어나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특징적인 외관 때문에 핸들링이 불편하거나 하진 않지만 딱히 편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체감되는 단점은 기존에 썼던 가방에 넣을 때 저 독특한 외관때문에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 1.2x 컨버전 렌즈를 끼운 상태라면 더욱 수납 효율이 떨어진다.
자동초점은 요즘 나오는 카메라들과 비교하면 형편없다. 오죽하면 자동초점 검출 범위를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로 나눌 수 있는 기능까지 제공할까.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라 보인다. 나의 경우 Mamiya, Leica등 수동 초점 카메라를 써왔어서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빛이 충분한 낮엔 확실히 좋은 품질의 사진을 보여주니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 실내에서 테스트 삼아 촬영해 보니 약간 힘들긴 한데. 보통 저녁에 실내에서 저조도일 때 망원화각의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어서 그냥 GR3를 쓰면 되니까 문제가 되지 다았다. 카메라 하나에 모든 것을 원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보정 과정에서 필름을 스캔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데 하나는 색감을 만질 때 미리보기에서 색감이 반영되는 느낌이 마치 이전에 실버패스트를 사용할때의 느낌과 비슷했다는 점이고. 하나는 그 만큼 느리다는 것이다. 🤣
명부의 보정 관용도는 알려진대로 별로다. 따라서 촬영시 화이트홀이 생기지 않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암부의 경우 너무 어둡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살아난다. 다만 필름과 비교했을 때 DP3Q는 그린, 퍼플 노이즈가 패턴을 띄며 같이 살아난다. 이 노이즈는 SFF, Lightroom, Photoshop셋 다 완벽하게 잡기 어려운데. 컨텐츠를 소비하는 단말에 맞춰 사이즈를 줄일 때 대부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선으로 정리된다.
사진 편집 툴에서 사진을 확대하고 노이즈를 보며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경우 구입을 한번 더 고려해보는것이 좋겠다. 처음엔 나도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포베온 센서 특성 상 얻는 장점만큼 잃는 단점이라고 생각하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고. 앞서 언급한대로 최종 컨텐츠에서는 그닥 거슬리지 않는 정도여서 괜찮았다.
케이스는 2개를 구입해봤는데 하나는 율리시스의 바디수트이고 나머지 하나는 외장 뷰파인더를 장착한채로 사용할 수 있는 가죽 케이스이다. 뷰파인더를 체결한 상태가 멋스러워서 한동안은 후자의 케이스를 씌운 상태로 사용할 거 같다. 율리시스 케이스는 외장 뷰파인더를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다. 이는 정품 가죽 케이스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활용성이 떨어지는 거 같다.
만약 외장 뷰파인더를 사용하지 않을것이라면 적극 추천한다. 다만 현재 단종이어서 중고로 구할수 밖에 없는 것이 아쉽긴 하다.
뷰 파인더 케이스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판매하고 있어서 외장 뷰파인더를 쓰는 사용자에게 추천하는 케이스이다. 카메라 본체까지 덮지 않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뷰파인더를 장착한 상태에서도 스트랩이 거슬리지 않게 연결되어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뷰파인더 마개를 끼울 수 있게 되어있는데 이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든다.
뷰파인더와 컨버전 렌즈까지 장착하면 사실 부피가 안드로메다로 가지만. 매일 들고다니는 것이 아니고 사진을 찍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외출 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라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아직은 들지 않는다. 취미로 하는 사진인데 이런 아기자기한 맛은 오히려 즐거움을 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뷰 파인더 케이스는 오늘 받아서 아직 실사용기는 없다. 앞으로의 글에서 다뤄 볼 예정이다 😁
고성, 속초, 양양 여행 (feat. SIGMA dp3 Quattro)
군사 통제 지역이였던 고성 근처 해변가들이 통제가 해제되고. 사람의 손이 덜 탄 바닷가들이라 이쁘더라 라는 소식은 한 2년 전 부터 계속 들었다. 하지만 교통이 만만치 않아 계속 가고싶다는 말만 해왔었다가 며칠 전에 다녀왔다.
사실 통제가 풀리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한지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한다. 그래도 누구나 갈 수 있는 곳들보다는 훨씬 자연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사람 손이 덜 타야 이쁜 자연환경이 남는 다는 것은 참 슬픈 현실이다.
고속도로 IC의 램프 구간 내에 조성된 작은 공원들이 그 것을 증명하고 있다. 몇 m차이로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거들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최대한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원래 고성 통일전망대를 다녀오려고 했으나.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잠정적으로 폐쇄되었다고 한다. 해서 완전 북쪽까지는 못가고 화진포의 성을 다녀왔다.
화진포의 성은 일제강점기 말 때 독일인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 원래는 영국 선교사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다. 이후 김일성과 북한군 간부들의 휴양지로 사용했다고 한다.
전쟁 이후에는 한국군이 점령하여.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하여 육군 및 사병들의 휴양지로 사용하다. 지금은 일반에 공개하여 안보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근처에 소나무숲길이 있는데 영국 선교사들이 골프연습을 하던 시설이 조그맣게 남아있다. 일단 별장으로 관리되던 곳이다 보니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어떻게 찍어도 이쁜 사진이 나왔다.
이 곳 일대는 특이하게 산들이 모두 소나무로 덮여 있어서. 고요하고 산책하면 솔방울 밟는 소리가 너무 기분좋게 울리는 곳이었다.
이어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와 송지호해수욕장에 갔다. 이 때가 해질녘이었는데 금색의 햇볓이 드리운 해변가의 풍경이 너무 좋았다. 이 곳은 해변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죽도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그래서 상당히 이국적인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다만 바로 옆에 큰 호텔이 들어와서인지는 몰라도 해변가 안쪽에 공사 가벽과 쓰레기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이제 이 곳도 몇년 뒤에는 흔한 풍경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여러번 와서 풍경을 담아 가고 싶다.
1차 속초여행
힘겨웠던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 지인들과 함께 속초로 여행을 갔다. 강원도는 멀고 교통이 불편하다는 인식 때문에 망설여 졌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미국 출장이 취소되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답답함을 느꼈던 터라 아무말 없이 다녀왔다.
강원도는 군 시절의 기억과 교통의 불편함으로 여행지 리스트에서 제외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속초로 직접 갈 수 있는 고속도로도 생겼고. 고성 위쪽에 군사 통제에서 벗어난 인적 드문 해변가의 소식도 있어서 얼마 전부터 관심이 생겼다.
성남에서 출발하여 약 2시간정도만에 영랑호 앞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airbnb 로 독채를 빌린줄 알고 있었는데. 옥탑방 전체였다. 방도 두개고 화장실 샤워실도 있고 무엇보다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숙소 앞쪽으로는 영랑호, 옆으로 조금만 나가면 바로 동해 바다가 있어서 편하게 놀다 올 수 있었다.
속초 중앙시장의 회 센터는 지하 1층에 있다. 수산시장을 갈 때마다 항상 호객행위와 덤테기를 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호객행위는 조금 있었지만 무시할만 했고. 덤테기는 딱히 없었던 거 같다. 국내산 농어 두 마리와 이것저것을 회로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특히 국내산 농어는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오징어 순대, 아바이순대도 먹었는데. 오징어순대가 독특하고 맛있었다.
속초 시내 구경만으로는 1박 2일정도가 적절하다. 5월 쯤에 한번 더 올 생각인데 그땐 고성 윗쪽에 있는 군사 통제가 풀린 해변가를 다녀올까 한다.
홋카이도 5일차 - 비에이에 갇히다
그날 아침엔 눈보라가 내리지 않았다. 겨울 홋카이도를 여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비에이 시가지 근처 ‘키타코보’ 카페를 목적지로 찍었다. 영업 시작시간이 아직 한참 남아서. 숙소 근처 흰수염폭포와 청의호수를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청의호수는 겨울에도 이쁘지만 눈이 쌓이지 않았을 때 보이는 푸른 물빛을 보는것도 상당히 이쁘다고 한다. 겨울에만 두번을 갔는데. 여름도 좋다지만 이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 군데를 들르고 난 뒤에도 아직 영업시간이 되지 않아 비에이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세븐스타 나무를 촬영하러 갔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진입하는데. 차 몇대가 이미 주차해 놓은 상태였다. 차가 없는 반대편에 차를 세우려고 들어가는 순간. 차가 눈을 단단히 뭉치는 소리가 났고 차는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차 안에서 당황한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와서 눈을 파 보기도 하고 자세제어장치를 끈 상태에서 차를 밟아봤지만 빠져나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 결국 렉카를 불렀다. 세븐스타 나무를 들른 관광버스 5대가 왔다 갈때까지 그렇게 주차장에 갇힌 상태에서 2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다행히 차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 날은 바로 숙소로 가고 싶었다. 나중에 렉카 비용은 약 13만원정도가 청구되었던것 같다. 근데 눈에 같힌 상태에서 오히려 상황이 웃기고 신선해서 나름 재미있었던듯 하다.
홋카이도 4일차 - 비에이
아침부터 폭우가 내렸다. 원래 이번 여행에는 비에이의 다양한 모습을 담으려 계획했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전날 비에이로 들어가기 전에 샀던 방수팬츠를 입고 장비를 챙겨 나가는 동안 즐거웠다. 밭에 들어가면 눈이 허리춤까지 올 정도로 눈이 많이 왔는데. 역시 많이 겪어본 지역이라 그런지 제설이 잘 되어 있었고. 운전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어딜가던 조용한 곳을 찾던 나에겐 최적의 장소였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눈을 맞아가며 한참을 사진을 찍었다. 바람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내리는 눈 끼리 서로 부딫히는 스르륵 하는 소리만 들렸다. 그 조용함을 담았다가 필요할 때 어디서든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할 수 있는건 있는 힘껏 숨쉬고 눈으로 보는 것 뿐이었다.
한참 구경을 끝내고 아사히카와 동물원으로 향했다. 펭귄산책으로 유명한 동물원인데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볼거리가 많았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동물들이 있어서 재미있게 구경하고 왔다.
동물원은 갈때마다 우리 안에 있는 동물들이 불쌍하단 생각밖에 안 드는데 여긴 동물들한테 잘 해주는것으로 보였다. 수명이 다 할때까지 잘 살수 있도록 책임만 진다면 그렇게까지 딱하게만 생각할 것은 아닌듯 싶다.
숙소로 돌아오는 중에 폭설에 뒤 덮힌 기찻길이 보였다. 너무 이뻐서 갓길에 안전하게 차를 세우고 허리 밑을 전부 포기한채로 기찻길 앞까지 왔다. 선로를 운행하고 있지 않아서 위험하진 않았다. 나중에 보면서 너무 맘에 들게 나와서 기분좋았던 사진이다.
사진을 건졌지만 하체가 촉촉히 젖은 채로 숙소에 돌아와야 했다. 방수팬츠 자체는 문제가 없었는데. 발목 부분에 눈이 들어오면서 생긴 불상사였다. 내일은 또 어떤 사진을 건질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오래된 다다미 방에서 잠이 들었다.
홋카이도 3일차 - 온천부터 비에이까지
여느때처럼 느긋하게 준비한 뒤 숙소를 빠져나왔다. 이번 여행을 결심한 계기가 된 것은 비에이와 온천이었는데. 비에이는 오늘 가고. 온천은 사실 가고 싶었던 곳의 예약이 꽉 차서 아쉬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전 날 자기전에 온천 숙박업소의 웹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1인실의 경우 평일 오전엔 예약이 잘 없고 가면 거의 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씨코스호를 떠나 북쪽으로 향하기 전에 온천에 들렀다.
예상대로 차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없었고. 여유롭게 개인실을 2시간 빌릴 수 있었다. 가격은 4,500엔으로 대략 5만원 정도였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따듯한 물 속에서 씨코스호의 겨울을 보며 온천을 할 수 있었던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온천수는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듣기로 좋은 물은 약간 미끈미끈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 온천수도 그래서 신기했다. 2시간을 모두 온천수 안에서 있다가. 비에이로 향했다.
첫 해외여행때는 여행책에 굉장히 의존했다. 가고싶은 곳이 있는 페이지들에 포스트잇을 잔뜩 붙이고 항시 휴대하며 다녔었는데. 지금은 로밍을 하고. 구글맵을 보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종종 여행객에 최적화되지 않은 장소를 방문하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헤프닝들이 단조로울 수 있는 여행을 매우 흥미롭게 만들었다.
아래 카페에서 직원분이 나에게 수줍게 한국말로 한국 여행도 갔었고 한국 좋아한다고 이야기해주셨을 때. 느꼈던 낮간지러움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야기를 듣다 테이크아웃 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는데.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 그 때가 생각이 나서 피식했었다. 누가 알려주었거나 블로그만 맹신했던 예전에 이런 일들은 드물었고 오히려 실망했던 적이 많았다.
홋카이도 2일차 - 본격적인 눈길 주행
홋카이도의 식당들은 대부분 오전 10시 이후에 문을 연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여행 계획을 세웠다.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그런 행동이 멋진 풍경을 보는 보상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절반 정도는 섣부른 계획으로 비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정말 필요할 때 빼고는 아침을 여유있게 보내곤 한다. 숙소 안에서도 시설을 이용한다거나 안내문을 읽다 보면 모르는 것도 알게 되고 행사도 참여할 수 있게 되는 등 재미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시코쓰호 먼저 들르기로 했다.
여긴 원래 여름에 시코쓰호 페리를 탈 수 있는 부둣가인데 겨울이어서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얼음 조각 축제를 하고 있었는데. 굳이 보고 싶지 않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곳까지만 들어갔다 나왔다.
점심을 떼우러 시코쓰호의 북동쪽 산 너머에 있는 치토세로 향했다. 지방도로라 전혀 제설이 되어있지 않은 눈길이었는데 스노우타이어라 전혀 미끄러지거나 하는 등의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오히려 현지 사람들은 나보다 더 빠르게 차를 몰았고 운전에 있어 중요한 것은 흐름을 깨트리지 않아야 하는것이라 생각했던 나도 그 흐름에 끼어들었다. 물론 과속을 심각하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도로는 2차선이지만 중간중간 차를 잠깐 대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그런 공간이 나올때 마다 차를 잠깐 대놓고 카메라를 꺼내 풍경들을 담았다.
난 관광지 주변 알려진 음식점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재미도 없고 생각보다 맛도 기대만큼이 아니었던 것이 그 이유이다. 불필요한 고집일지 모르겠으나 한글 메뉴판이 별로 달갑지 않다.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겨우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지만 메뉴판을 보고 더듬더듬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잘 했을때 더 보람있고 기억에 남는다. 치토세시에 있는 르타오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유명해서 카페베네만큼 오타루 시내를 차지하고 있던 브랜드라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조용하고 맛도 좋았다.
오믈렛과 치즈 케이크를 시켰는데 역시나 너무 맛있었다. 오른쪽 그릇에 장국을 주었는데 은근 잘 어울렸다. 디저트 가게가 점심식사까지 제공하니까 하나도 부족할 것이 없어 보였다. 점심은 그냥 여기 오면 될듯.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노던 호스파크’ 란 곳을 찾았다. 말을 사육하는 목장인데 내부를 보기좋게 꾸며 놓았고 공연도 하는 곳이었다.
노던 호스파크를 나와 근처 우토나이 호수에 들렀다. 근처에 철새들을 관찰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어서 앉아서 몸을 녹이고 천천히 구경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와중 뜬금없는 교통정체에 휘말렸다. 알고 보니 시코쓰호 페리 탑승장에서 저녁에 축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로가 2차선이라 정말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홋카이도 1일차 - 고속도로를 타고 오타루로
겨울의 홋카이도엔 오호츠크 해풍으로 인해 많은 눈이 내린다. 제설이 안된곳에 들어가면 허리까지 푹 빠지는 정도다. 스케일이 다른 강설량 덕분에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멋진 풍경들을 볼 수 있다. 러브레터라는 일본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그 영화를 본 것은 아니고. 2년 전 홋카이도 여행 중 하루 일정으로 렌터카를 이용해 비에이를 다녀왔었는데. 그 때 보았던 풍경들이 여행이 끝나서도 잊혀지지 않아 같은 계절의 비에이를 두 번째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이번 여행 중 비에이에는 6일 머무를 예정이었다. 비에이는 눈보라가 몰아칠때도, 구름이 걷혀 푸른 하늘일때의 풍경도 모두 보고 카메라로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간에 비에이를 4일로 줄였다. 숙소가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기도 했고. 6일씩이나 있기에는 갈 곳이 몇 군데 없었기 때문이다. 4일도 충분했다. 렌터카는 Mazda MX-3를 예약했는데 동급인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Toyota CH-R를 빌려주었다. 여행 중 고속도로를 많이 이용해야 해서. 8일간의 홋카이도 고속도로 패스를 구입했다. 렌터카 센터에서 지출한 내역은 - 8일간 차량 렌트비 (약 70만원), 8일간 홋카이도 패스 (¥8,200), ETC차재기 카드 (¥324) - 였다. 빌린 렌터카를 타고 제일 먼저 오타루로 향했다.
차량에 달린 네비게이션에서 오타루를 목적지로 설정하려고 했는데 ‘맵 코드’라는 개념을 알아야 했다. 일본에서는 목적지를 찾을 때 맵 코드나 전화번호로 찾는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매립 네비게이션처럼 검색어 기능이 없었다. 맵 코드는 각 장소마다 부여된 고유 번호인데 이게 찾기가 까다로웠다. 구글맵에서 숙소를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는데. 이를 차량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로 설정하려면 맵코드를 알아야 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단 것이다. 한참 후에 전화번호로도 목적지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목적지를 설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구글맵 상에 전화번호가 없는 장소도 있어서. 나중에는 그냥 구글맵을 이용했다. 음성안내가 조금 이상한것 빼고는 생각보다 잘 안내해 주었다.
렌터카로 여행을 계획했을 때 제일 고민이었던 부분이 바로 주차 문제였다. 일본 주차요금이 비싸단 말은 계속 들어와서 알고 있었고. 관광지의 경우 주차를 못해 빙글빙글 도는 상황이 생길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행 내내 주차 문제로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가고 싶은 곳의 주차장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영수증을 잘 챙기면 요금 할인도 되니 생각보다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오타루에는 점심 쯤 도착해 관광주차장에 차를 대고 (¥600 1일 요금) 2년 전 점심을 먹었던 식당으로 향했다. 가게에서 제일 잘 팔리는 카이센동을 주문했다. (¥3,500) 따듯한 밥 위에 올려진 신선한 연어알, 게살, 연어회 성게알들을 씹으며 2년전 기억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맛은 변함없었다. 해산물은 정말 신선했고 먹을때마다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식사 후 운하부터 시내를 슬슬 걸으며 오르골당까지 찍고 돌아왔다. 2년 전엔 늦은 저녁이었는데 오전에 밝을 때 보다는 노을이 질 때쯤의 오타루가 가장 낭만적이다. 해가 지고 운하를 따라 세워져 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흩날리는 눈과 강물에 반사되며 풍기는 묘한 분위기만이 이 곳에 올 의미를 부여한다.
낮선 곳에서의 눈길 운전이 피로할 것이라 생각하여 첫 날은 덜 운전하는 코스로 계획했다. 오타루를 뒤로 하고 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보통 하루 최대 150km 정도만 이동하도록 여행 코스를 잡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다. 공항근처, 고속도로들은 제설이 잘 되어있어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위에 사진에서 보이는 것 처럼 휴게소, 각 시의 시내는 제설이 안되어 있어서 서행해야 한다.
첫 번째 숙소는 큐카무라 시코쓰코. 시코쓰호 옆에 딱 붙어있는 조금 오래되었지만 정원이 있는 조용하고 깔끔한 곳이다. 힐링을 위한 곳이라고 할까나? 여긴 숙박에 기본적으로 맛있는 아침과 저녁이 포함되어 있다. 아침엔 간단한 뷔페가 제공되고. 저녁에는 뷔페 + 특선요리코스가 제공된다. 작지만 깔끔한 온천도 있고 정말 만족스러웠던 곳이었다. 직원들도 친절했다.
위 메뉴에서 맥주만 추가로 주문해서 마셨다. 맛있어서 남김없이 모두 먹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도 음식을 남겼던 적이 없던거 같다.
동생의 면접 이야기 중 들었던 생각
오랜만에 떠난 휴가중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동생이 몇달 전 본 면접에서 면접관의 도발 아닌 도발을 받았고. 그 때문에 면접을 위해 준비했던 태도가 아닌 동생의 평소 성격이 드러났고. 결국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추측이었다. 원래 사람은 본인의 잘못이라 하면 성자가 아닌 이상 조금의 화가 나기 마련이기에 동생의 반응은 이해할만 했다.
내 동생의 성격은 관심이 있는 부분에는 남들이 생각하기에 까다롭다 할 정도로 디테일을 챙기지만 아닌 부분은 철저히 무관심한 성격이다. 디테일을 챙기는 부분은 오히려 나보다 더 세심하게 챙기는 스타일인데. 만약 그런 분야에서 타인의 참견을 받으면 수긍하거나 크게 화를 낸다. 중간이 없는. 형제가 아니랄까봐 나와 정확이 똑같은 성격이다. 그 날 동생은 아버지의 반복된 지적에 대해서도 끝까지 수긍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이런 모습에서 동생이 조금은 컸나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생각은 이랬다. 그날 동생은 면접관의 도발 - 정확하게 모든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은 만약 타 부서의 상사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설득을 해도 완강히 거절하여 동생의 담당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쩌겠냐. 라는 질문이었는데. 동생은 "일단 그 분의 상황을 들어 보고 서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은 뒤에 설득해 보겠다" 라고 답했고. 이 답변에 "그래도 안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는 질문에 "당장은 어렵지만 혹시 나중에라도 가능하게 될 수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기억해 두고 추후에 다시 연락하겠다." 답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지속적으로 "그래도 안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는 응답을 받았고. 이런 질문을 4번정도 지속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나 같아도 뭔가가 끓어올랐을 것이다 - 에 결국 동생은 "그럼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 대답은 약간 화가 난 상태에서 했기 때문에 까칠하다고 느낄만한 모습이 드러났을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분명 동생과 앞으로 일을 할 담당자가 기분 좋지 않을 모습이기 때문에 결국 판단 기준에 의해 탈락된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나와 동생은 그 이야기에 다른 의견을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일을 할 때 그런 껄끄런 후임과 일하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다음 면접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런 성격을 내비치지 말라고 이야기하셨다.
그 상황에서 난 동생에게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동생은 어떻게든 무속인 면접관이 만들어 낸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려 했을 것이다. 면접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인내심이 높아진 상태여서 어떤 사람이든 좋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겠지만. 합격한 후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실제 그런 상황을 접했을 때. 그렇게 조금이라도 발끈하는 성격이 없는 사람은 내가 담당하는 일에 대한 욕심이 없이 그냥 물 흐르듯이 흐르는 세월이 지나가기만 바라는 사람일 것이다. 미열이라도 그런 부분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본인 뿐만 아니라 주변에 발전을 주는 사람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아버지는 그런 열정은 입사에 성공한 후에 가지는 것이 맞고 지금 당장은 그런 성격을 억누르는 것이 맞다고 말씀하셨다. 나나 동생이나 그 의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 이야기를 더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동생이 그런 성격을 일 하는 데 잘 적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는 그런 미열이 없는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길 바란다.
글쓰기의 어려움
최근들어 여기에 글을 쓰는 주기가 길어졌다. 달랑 사진만 올리는 것 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면 내 생각도 정리되고 세세히 읽진 않으시겠지만. 혹시모를 피드백도 재미있을듯 해서. 평소에 글쓰기 주제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몇몇 주제를 떠올려도 그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글쓰기가 참 어렵다는것을 느낀다.
사실 이 글도 '어른은 언제 될까' 라는 주제로 2단락을 적다가. 세부 소재가 너무 연관성이 없어서 지우고 위에 작성하고 있다. 무언가 내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이나 가볍게 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서 그런지 1단락을 쓰고 읽어보면. 그냥 신세 한탄과 같은 느낌이다. 전 회사에서 기술문서 작성을 위한 글쓰기를 배웠는데. 여기엔 그렇게 딱딱하게 쓸 필요가 없긴 해도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에 여러 번 썼다 지웠다 한다.
'어른은 언제 될까'의 글 주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최근 들어 신체에 작은 흉터가 조금씩 생기고. 이 흉터가 붉게되어 없어지지 않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아마 겨울에 건조해서 갈라진것으로 생각 되지만. 그런 흉터들을 보면서 나이가 드는 건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외형적으로 생기는 변화 만큼 내 생각도 그 만큼 변했는지가 궁금했고. 노트북이 놓인 식탁 옆에 서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어렸을 때 보았던. 닮기 싫은 사람. 지금 보고 있는 닮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나와 닮고 싶은 사람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닮고 싶은 사람을 완전히 닮을순 없을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스스로 판단하는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낼까 하다가. 너무 뻔한 이야기를 돌려 말하는 느낌이어서. 머리가 아파서 그만뒀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데. 괜찮은 방법인듯 하다.
나의 일이나 취미에 대한 주제는 재미있게 쓸 수 있을거 같다. 그런데 나는 모든 상황에서 다 정답인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내 의견을 상대에게 말할때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이게 컨디션이 안좋을땐 병처럼 아무말도 안하고. 감정의 변화를 숨기면서 묵묵하게 내가 해야할 일만 하게 되는 때가 많다.
나이를 먹으며 생긴 가장 큰 성격의 변화인듯 싶다. 아마 내 생각과 반대로 말을 참 쉽게 생각없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다 생긴 변화이지 않을까 싶다. 이걸 좀 다스려야 할 듯 한데. 어렵다.
내가 심리적인 결점이 있는 듯한 생각도 든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여지는 없는지.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할 순 없는지. 생각해보아야겠다.
부모님과 함께 2월 초에 다녀온 철원 한탄강 얼음 트래킹중에 한 롤 찍었다. kentmere는 왠지 나랑 잘 안맞는 거 같다. 너무 옛날 느낌이라고 할까. 한롤 더 남았는데 담번엔 다른 필름으로 스냅을 찍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