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 작가의 주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사진에서 작가의 주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사진이 예술로 인정되지 않던 시절.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이기 때문에 예술로 분류하지 않았던 1930년대 최초로 MoMA 에서 사진으로 개인 전시회를 가졌던 작가 워커에반스의 생각이다. 취미 사진가의 입장에서 그의 사진들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 대부분 미국의 건축과 일상을 단조로운 선으로 표현한 사진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어느정도 이해됐다.
다시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정말 사진에서 주관을 배제할 수 있을까? 배제할 수 있다면 작가가 어디까지 개입하는 것이 객관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걸까? 셔터를 누르는 대상이 사고력이 없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진집 Many and Called에서 작가는 '주관의 배제' 를 위해 카메라를 목에 걸고 유선 원격 셔터를 코트 안으로 해 손에 잡고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최대한 무의식적으로 촬영했다. 하지만 어느 비평가가 '이미 그 사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꾸몄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라고 이야기했고. 본인도 인정한 듯 하다.
또 작가는 그 당시 사진가들의 신념이었던 프로파간다를 거부했다. 사진으로 사회를 비롯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위선이라 생각했다. 앞에 언급한 철학과 꾸준히 유지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런 부분에서 내 생각과 비슷한 점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내 방식이 옳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방식이 아니다.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데 나의 상황에서 했던 방식이 과연 옳을까? 과거의 방식이?
작가의 '주관의 배제'에 대한 탐구는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대단한 것은 아무도 사진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다는 점이다. 그런 그의 방식이 주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기회를 잡지 않았을까? 어느 부호의 요트 여행사진을 찍어 줄 기회도 잡고, 당시 소작농의 삶을 담으려 했던 프로젝트에서 다른 작가를 제치기도 했다. 무엇을 할 때 실력 하나만 가지고는 어렵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당일 책방에 있던 워커에반스의 책 모두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 결벽증이라고 까지 이야기하는 건물의 단순한 실루엣을 담으려고 했던 노력은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살짝 피식 했다. 일부는 그런 일관성이 없었는데 찍다가 지쳤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진을 보는 사람의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워커에반스는 워낙 오랫동안 평가가 된 사람이니..
그가 평생 고민했던 '주관의 배제'는 성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결과는 오늘날 팝 아트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주관의 배제'는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는 나도 궁금하다. 앞서 언급한 비평가의 이야기 전에 이미 사진가가 셔터를 누르는 시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주관이 개입된다. 이런 면에서는 차라리 '주관의 배제는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 이후의 작품 세계에 신경을 쓰는 로버트 프랭크 쪽 사진이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흔히 로버트 프랭크의 '주관적 다큐멘터리' 와 워커 에반스의 '객관적 다큐멘터리' 로 이야기하곤 한다)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비평을 순수히 받아들였던 사람이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진을 예술이라 이야기하지 않았던 시대상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모두가 공감하듯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드러내지 않으면 무시하기 십상이지 않은가.
남의 삶을 토대로 어떻게 살아나갈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시대와 환경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해법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가 어떤 고민을 했었고 어떤 시도를 했었는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보며 고민해보는 것은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단순히 워커에반스는 MoMA 에 개인 전시회를 했지만, 쑥스럽긴 해도 나는 나의 2016년을 돌아보는 개인 사진집을 만들 수 있고 또 너무너무 아주 까마득한 먼 미래의 이야기이겠지만 전시회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뭔가 나만의 방식을 계속 고집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일까. 아니면 타협하고 적절히 융통성있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고집하다가 정작 찍고 싶은 사진을 하나도 찍지 못하는것은 아닐지 그저 나의 현재와 목표 사이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이 글과 관련해서 artsy.net 에서 연락을 해 왔다. 해당 사이트의 로버트 프랭크페이지 링크를 넣어 주길 바랬다. 한번 둘러봤는데 깔끔하게 정리된 로버트 프랭크의 일대기를 볼 수도 있고 그의 작품을 구입할수도 있는 서비스다. 개인적으로 예술 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매우 좋은 자극이라고 생각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여유가 있다면 한번 쯤 구입해보는 것은 어떨까? artsy.net 의 로버트 프랭크 페이지
사진에 의도를 담고 싶다
출사 후 집에 돌아와 한숨 돌린 후 그날 찍었던 사진을 보다보면 좋은 사진을 선별하게 되고 이 사진들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 보면 촬영 당시의 상황과 관련이 있던 없던 어떠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예를 들어 우연히 다른 가족이 사진을 찍는 상황을 촬영했다고 하자. 이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이야기로 사진을 정리하는 형태는 의도를 담은 사진이라고 보기 어렵다. 의도를 담았다는 것은 최소한 촬영 전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것을 촬영하는 것이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찍기 시작한 것이 이제 1년 정도 된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중에 앞서 언급했던 의도를 담았던 사진은 3컷도 안된다. 좀 더 분발해야 하는 것인지 즐겨야 하는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겠다.
Kodak Dock 사용기
어느날 사진집을 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인쇄해 보면 어떨까? 포토프린터에 대해 찾아본 결과 보통 잉크젯, 염료승화 방식의 프린터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염료승화방식은 일반 사진관에서 인쇄하는 방식으로 잉크젯에 비해 소모품은 비싸지만 안정성이 좋다고 했다.
요즘 추새로 봐서는 염료승화도 두 가지로 나뉘는 것으로 보인다. 4x6 정도의 크기를 인쇄할 수 있는 중, 대형 프린터와 소형 엽서 크기까지 인쇄할 수 있는 캐논 셀피와 이 글에서 살펴볼 Kodak Dock 같은 종류다. 두 종류간의 가격 격차가 너무 커서 정말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지 않는 한은 소형 엽서 크기를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를 사용하겠다고 생각했다.
소형 염료승화 프린터를 구입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당시는 Kodak Dock 이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기존의 방식 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전히 Kodak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 주저없이 Kodak Dock을 구입했고 받아서 2주정도 사용해봤다.
패키지를 받았을 때 패키지 디자인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대형 프린터 패키지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디자인같다. 참고로 본체 사진을 보면 휴대폰을 도킹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때문에 아이폰용, 안드로이드용 2가지로 발매되고 있다 (USB-C 타입은 없다)
본체 박스 구성품은 카트리지 홀더, 본체, 전원 케이블이다. 인쇄를 하기 위해선 소모품을 먼저 연결해야 하는데 소모품은 카트리지, 용지 두 종류이다. 카트리지는 본체 우측의 트레이를 열면 삽입할 수 있고 용지는 홀더에 넣고 본체에 끼우면 된다.
그 다음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고 전원을 켠 후 휴대폰을 위쪽에 연결하면 된다. 인쇄할 사진을 선택하는 인터페이스는 바로 휴대폰인데 Kodak Dock 으로 앱스토어에 검색하면 설치할 수 있고 이 앱에서 사진을 고르고 간단한 보정 후 인쇄할 수 있다.
아래 사진처럼 휴대폰을 연결하고 좌측 하단의 1-Touch 버튼을 누르면 연결하겠냐는 시스템 메시지가 뜨고 확인을 누르면 앱이 자동으로 시작된다. (이 점은 상당히 편리한 부분인듯)
간단한 보정은 밝기, 대비, 이런 것을 조정할 수 있고 사진을 어떻게 자를지 조절 가능하고, 필터나 스티커 같은 효과를 지원한다. 인쇄할 사진은 한장 또는 여러장을 몇장씩 인쇄할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어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인쇄물의 품질은 역시 작은 크기이다보니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쨍하게 표현하는 수준은 아니나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고 무엇보다 만족하는 점은 염료승화 방식이기 때문에 색감이 달라질 수 있는 환경에서 느낌있게 출력이 된다는 점이다.
염료승화방식 프린터답게 살짝 어둡게 나오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색감이 완전 다르게 나온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사진을 찍고 타인에게 추억을 선물한다는 점에서는 딱 적합한 용도이다.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프린터의 모습을 하고있다는 점이 더욱 더 맘에 든다. Kodak Dock 때문에 조금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심이 난다 :)
이성적인 일, 감성적인 일
내가 하는 일은 지극히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과연 그것이 유용한것인가 아닌가를 따지고 하는 중간에도 어느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따지고 끝난 후 결과가 어땠는지 따진다.
나는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그런데 듣다 보면 정말 틀린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는 반박을 한다. 이 때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대화의 목적은 어느 한쪽이 제시한 방법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때 집중력을 잃는 등의 행동을 보이면 주도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게 어디있어' 라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많은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이 주도권을 잃는 것을 보았다.
피할 수 없이 이 상황에 처하면 이때부턴 감정적인 소모전이 되는 느낌이다. 내가 왜 옳은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리를 하며, 상대의 이야기에 논리적 오류를 찾아야 하는 것이 어렵다. 이게 문제와 나를 완전히 분리시켜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나의 작업물이 도마에 오르면 분리해 생각하기가 너무 어렵다.
아니 아예 분리라는 것이 존재할까? 내가 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게 어떻게 분리가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까지 겪었던 그런 대화의 양상은 상항 그게 옳다와 아니다 두 편이었다. 한번도 대화가 그것과 다른 방향으로 흐른 적이 없다. 분리할 순 없다.
나 혼자 편하고 재미있게 하는 사진 생활은 이런 소모전에서 자유롭다. 이 안에서는 맞다 틀리다의 기준이 없고 그저 좋기만 하면 된다. 너무 느낌이 좋은 사진을 찍고 인쇄해 보면 행복하다. 가끔은 직업으로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좀 오버..
이성적인 일과 감성적인 취미의 조합이다. 이전에 기타 연주를 할때도 그래서 너무 좋았나보다. 여기에 또 관계라는 개념이 끼어들면 피곤해지던데 이젠 그러지 않도록 조심할거다.
A3인쇄기를 사서..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중에 좋았던 사진을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포토프린터가 좋긴 하지만 내가 '사진집' 같은 너무 좋은걸 봐버려서.. 엽서 사이즈를 붙이면 별로 이쁘지 않을듯.
안목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이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데 나도 100% 동의한다. 예술은 조금 다를 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다른이의 생각과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사진집을 구입해 보는 것은 매우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보는 안목'이라는 영역에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은 없다. 다만 사진집을 보면서 느끼는 감각이 도움이 된다.
근래에 내가 사진집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첫째 인쇄 방법과 품질에 대한 내용이다. 사진은 일반적으로 모니터와 종이 두 가지의 매체를 통해 타인에게 전달되는데, 이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조금 더 세련되고 좋은 느낌을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위에 올린 사진집은 이라선 에서 구입한 윌리엄 이글스톤의 사진집인데 하얀 무광택지에 하얀색을 제외한 나머지 색에만 염료가 입혀져 있다. 손으로 만져보면 색이 입혀진 부분에서 독특한 촉감이 온다. 사진을 볼 때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하니 무언가 색다른 느낌인데 그 느낌이 좋아 나도 그렇게 내 사진들을 인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번째는 역시 다른 사진가의 관점에서 보고 배울 점이 있다는 점이다. 너무 일상적인 것들을 사진집으로 만든 작가가 있는 반면 어느정도 정돈된 독특한 상황을 찍어 만든 사진집도 있다. 이런저런 사진집을 보면서 '이렇게 한번 찍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할 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다.
세 번째는 어떻게 하면 다수의 타인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다. 사진은 단순히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은 여러 매체를 통해 접했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너무 굶주려 독수리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어린 소년의 사진부터, 가까운 시위 현장에서 대립하고 있는 전경과 시위대의 사진이 그런 예다.
나는 절대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아주 조그마한 것부터 주제를 잡고 10장 정도를 촬영해 앨범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일반적으로 그런 형태의 작업을 '프로젝트' 라 한다고 들었는데, 이리저리 검색을 해 보니... 잘 찍는 분들이 너무 많다. 아무것도 내밀 수 없다. 셔터를 많이 눌러야 겠다.
필터와 히스토그램
아름다움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는 다채롭고 풍부한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다. 음악에서는 낮은 저역대부터 고역대까지 능숙히 낼 수 있는 능력이고, 연극에서는 슬픔과 기쁨을 두루두루 전달할 수 있는 연기력이 되겠다.
사진에서 히스토그램을 관리하는 것도 비슷하다. 검은색과 하얀색까지 넓고 풍부하게 표현된 사진은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사진일 가능성이 높다.
히스토그램은 얼마만큼 다양한 색상이 사용되었는지 알려주는 그래프이다. 좌에서 우로 검은색부터 하얀색을 나타내고 그래프의 높이는 그 지점의 색이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그래서 히스토그램만 보고도 대충 어떤 사진인지 짐작할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측으로 심하게 몰려있는 형태일 경우 낮에 찍은 하늘일 수 있고, 좌측으로 몰려있는 경우는 실내 또는 밤에 찍은 사진일 수 있다.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필터가 어떤 원리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히스토그램에서 일부 색 영역을 제거하거나 변화시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 를 보면 어두운 부분에 살짝 녹색이 도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어두운 부분에 RGB 중 Green 값을 높이는 형태로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다.
결국 필터는 카메라 바디가 현실에 가깝게 표현하려 노력한 사진을 왜곡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일련의 과정이다. 단순히 말해서 일부 명암 영역이 변조된 '모자란 사진' 이 되는 것이다.
신기한 점은 이런 '모자란 사진' 이 더 좋아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좋은 필터는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치겠지만 간단히 필름과 같은 효과를 내는 방법으로 암부를 클리핑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히스토그램에서 좌측 영역을 오른쪽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두운 부분만 밝게 되어 조금 빛 바랜 사진의 느낌이 난다. 사진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며 신비로운 느낌을 갖는다. 필터를 적용한 사진이 좋아보이는 이유는 비현실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국내 사진보다 국외 사진이 조금 더 매혹적이고 좋아 보이는 이유와 같은 이치다. 한번도 목격하지 못한 새롭고 재미있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노이즈는 결과물을 더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면 이런 작업의 방식이나 피사체의 선택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사진을 남기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나중에 다른 곳에서도 사용하기 위해서다. 과한 필터를 적용한 사진은 사용할 당시에는 좋을 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쓸 수 없는 사진이 되어 버린다.
충분히 좋은 사진이건 그렇지 않건 필터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고 좋은점과 아쉬운 점을 정리한다면 필터 없이도 감명을 줄 수 있는 사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아직 모자라지만 언젠가는 새롭고 독특하지 않은 사진으로도 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비전?
최근 사진에 대한 관심이 커져 관련 서적을 여러 권 구입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추천했던 데이비드 두쉬민의 '프레임 안에서'를 읽고 있는데.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는 것 보다, 관련지식을 알고 임하는 촬영은 더 재미있고 깊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예술을 분석하는 문서들은 대부분 어떠한 한계(한계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로 인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독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필요로 하는 내용이 많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3번째 읽는 중이다. 특히 사진을 찍는 사람의 비전 이 소개되어 있는데 설명이 조금 모호하다. 그나마 구체적으로 적힌 구절은 다음과 같다.
“수십억 명 중의 한 사람인 우리 자신이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옳다거나 그르다고, 또는 조화롭다고 느끼는 것들에 관한 문제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 '비전'이란 것은 '취향' 과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위의 인용문은 결국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 과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이 '비전'을 타인에게 원할히 전달하는 과정은 내 사진을 타인에게 보인다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타인이 좋다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은 나의 '취향'이 보편화 또는 대중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나만의 비전을 찾았을 때 그 비전이 대중적이지 않아도 꿋꿋이 그 비전을 고수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취미로 사진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올린 사진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면 슬플 것이다. 이전에는 사진을 찍는 이유로 타인의 관심에는 무심하려 했지만 가끔은 욕심도 생기더라...
이 '취향'을 대중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사진을 보는 사람을 잘 관찰하는 것이다. 사진 목록을 보여주고 좌, 우 키로 쉽게 넘길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준다. 한장한장 넘기다 2초 이상 머무르는 사진을 잘 관찰한다. 가능하다면 어떤 점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물어보고 이야기를 듣는다. 많은 사람에게 의견을 듣기는 어렵겠지만 :)
그리고 나의 경우 주의는 필요 하겠지만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원하는 언행을 일삼..아니 하는 편이 조금 더 이 '취향'을 세련되게 하는 방법인듯 하다.
결국 순수히 나를 위해 사진을 찍지 않는 한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고민을 하는 이유는 조금 더 재미있는 사진 생활을 하기 위함이다.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다.
말이 많은 사람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 싫다. 스물아홉의 삶을 살면서 말이 많은 사람 치고 정말 실속있는 말을 하거나 본받을만 하다 느꼈던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하나같이 그냥 그랬다.
지금까지 살면서 봤던 말이 많은 사람의 종류는 두 가지였다. 하나도 남지 않는 우스개 소리로 그 순간을 재미있게 보내는 사람, 표현의 방법이 서툴러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하는 사람이다.
첫 번째 사람은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다 같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눈치없이 공감대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 제외)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이런 대화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항상 유리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하는 소리들이 철없는 애기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들이어서 듣다보면 집에 가고 싶더라...
두 번째 타입의 사람.. 내가 들어주는 입장이 되는 경우 너무 힘들다. 이런 사람의 경우에도 이야기 하는 내용이 개연성있게 연결되는 사람은 그나마 좀 낫다. 하지만 마치 의식의 흐름 처럼 대화의 주제가 들쑥날쑥하거나, 남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너무 힘들다. 이런 사람의 대화를 듣다 보면 어렸을 적 `책을 많이 읽읍시다` 라는 권유가 이해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러지 않는지 경계를 하는데.. 경계를 하다 보니 말 수가 줄어들기까지 하더라...
말 수가 많으면 불리하다. 말 수가 많아 실수할 확률이 증가하고, 개연성있게 내용을 이어가지 못할 확률 역시 증가한다. 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하는 이의 자신감있는 태도에서 믿음을 얻고 계속해서 듣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는데, 말을 많이 할수록 이 믿음을 얻기가 어렵게 된다.
모두의 공감대를 얻을 순간순간의 우스개 소리도 잘 하고 싶지만... 그 부분은 자신이 없으므로.. 난 언제나 자신감있는 큰 소리로 타인에게 의사를 명확하고 짧게 전달하고 싶다.
사진을 찍는 이유
예비군 훈련중엔 많은 생각을 한다. 나의 일 또는 무언가에 임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곤 하는데 오늘은 내가 왜 사진을 찍고 있나 궁금했다. 그저 무의미하게 컷 수만 늘리고 사진들은 그저 하드디스크에 있다가 내가 죽거나 잃어버리지 않는 이상 그 아무도 볼 수 없는 것 뿐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흘러 오후 7시쯤 훈련의 막바지가 되었다. 매 훈련때마다 힘든 무언가를 꼭 하나씩 시켰었는데 이번에는 동네 근처 산에 오르는 일이었다. 무거운 군장과 총을 매고 비탈길을 올라 목적지에 도착했다. 온몸에 흐른 땀을 미미하게 부는 바람에 말리고 숨을 고른 다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무들 사이로 내가 매일 다니던 성남 시내 대로가 보였다. 매일같이 다니던 그 대로의 풍경은 정말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제각각인 건물 색상, 간판 색상, 낙후된 건물들, 지저분한 거리는 셔터를 누르기 주저하게 만드는 피사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날 저녁 산 위에서 바라본 모습은 달랐다. 카메라가 없어 사진을 남기지는 못해 아쉬웠다.
어쩌면 취미 생활 수준의 사진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눈 앞에 있는 아름다운 순간을 정확하게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역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맙게도 나의 환경은 이 목적에 다다르기에 정말 차고 넘친다. 단지 나의 역량이 부족할 뿐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여러 시도를 해 봐야겠다.
첫 스튜디오 촬영
어떤 이벤트의 '첫' 이라는 수식어는 참 신기하다. 어떤 악조건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저 즐겁기만 하고 주량도 평소보다 훨씬 세지고 끝나고 나면 한없이 아쉽다. '첫' 동호회는 아니지만 '첫' 스튜디오 인물 출사는 정확히 그랬다.
계속되는 야근과 피곤 때문에 활동반경이 집과 회사 두 군데 뿐이게 된 나에게 '하루에 한장 촬영' 이라는 미덕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 좁았던 주변환경 내에서 아쉬운 마음에 환경에 대한 관찰은 늘었으나 정작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약간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튜디오 내부는 180도 달랐다. 빛은 뭐 말할것도 없고 눈만 돌리면 흥미로운 피사체 투성이었다. 아 뭔가 굉장히 재미있었달까... 이래서 돈을 지불하고 스튜디오를 쓰는구나 하고 한방에 이해됐다. 가방을 구석에 두고 카메라를 꺼내 이리저리 촬영을 하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그 동안 촬영했던 경험이 초점이나 노출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만..
첫 번째 방의 색온도 설정으로 그날 내내 찍고 말았다.. 사진들을 보정하는 과정에도 몰랐고 그걸 출근하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 알아차렸다. 몇몇 사진을 보면서 '색온도가 왜 이렇지?' 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그랬던 것이다. 그래도 은근히 건진 사진이 많아 만족스럽다.
이 사진으로 '첫' 초상권 협의를 해봤다. 이런 처음 겪는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출사를 주제로 블로그 글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는 조금 생각해 봐야 할꺼 같다. 촬영이나 보정 기술에 관련된 나의 견해가 섞인 일기 정도가 될 듯 한데 올릴 사진이 많으니 글이 화려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보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출사다녀오고 나서 정리한 사진 목록을 비공개 플리커 앨범에 담아두고 몇번을 보았는지 모른다. 혼자 꺼내보면서 마치 내 보물상자를 열어보는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 맞는 취미이다. 프로가 아니고 아마추어니까 즐겁게 촬영하고 부담없이 소통하고 싶다.